감싸는 종이 연대기
대금주(포텐셜바이어포장)
미켈란젤로와 그 조수들이 작품 포장을 위해 특수한 종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그가 포장지 역할 가운데 특히 천착한 부분은 단연 작품과 포장지가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포장지 제작 전담팀까지 꾸렸던 미켈란젤로였다. 한 달 동안 공작의 깃털을 끓여서 나온 진액을 바른 포장지는 그림의 표면에 좀처럼 들러붙지 않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얼마 가지 못해 종이의 표면에 갖가지 벌레가 꼬이고말았다. 갓 일을 시작한 막내 조수가 달팽이가 지나간 길마다 냄새가 희석되고 오히려 몇 겹의 막이 씌워진 것과 같은 효과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간파했고 이 사실에 착안하여 포장지를 개발했다. 거의 보름의 시간을 더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지만 가치는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모든 그림은 이 포장지로만 싸여 이동했고 그때마다 그림의 구매자들은 포장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만 했다.
미켈란젤로가 도구인 포장지에 집중했다면 뒤러는 포장하는 방식을 고안해내기 위해 수차례의 실험을 하며 진지하고 실천적인 행보를 보였다. 별도의 제작 일지까지 직접 작성했던 뒤러였으나 그림 주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의 조수, 일명 ‘흰까마귀’가 전면에서 지휘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놀라운 붓 솜씨로 작업실에 합류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포장기술을 발휘하여 포장기술공이라는 직함까지 창조하게 된다. 뒤러의 작품을 주문하는 것은 곧 흰까마귀의 포장까지 구매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심지어 그녀의 포장을 자신 외에는 뜯지 않도록 명령한 컬렉터가 있었는데, 부르나티 공녀가 그 인물이다. 그녀는 포장에 연신 감탄을 하다가 결국에는 죽을 때까지 포장을 풀지 않았다. 대신 천국행을 위해 시에 있는 성당의 주교실에 작품을 기증하였다.
주교 역시 선뜻 포장을 풀지 못했지만 성당에 거주하던 고양이 세형제가 종이를 찢는 바람에 포장을 풀어야 했고 그 안의 그림, 그러니까 약 45년간 포장되었던 뒤러의 작품은 놀랍도록 색과 윤기, 냄새가 선명하였다. 남은 포장지는 주교가 그러모아 자신의 성경책을 싸는 데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두 화가가 포장된 후의 상태에 전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에 비해 앵그르는 포장되어 이동하는 절차의 확립에 엄청난 정력을 쏟았다. 그건 그렇고 18세기의 화가 중에 포장으로 한 획을 그은
사람이 고야라는 사실은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살았던 고야는 사실 남몰래 포장가라는 자아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이 팔릴 때마다 별실에 들어가 한동안 칩거하며 그간 수집해온 진귀한 포장지를 펼쳐 포장 방식을 요모조모 구성하는 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마침내 밖으로 나왔을 때는 전면, 측면, 후면, 모서리마다 완벽한 무늬를 가진 대단한 입체가 드러났다. 고야는 포장을 해체하는 방식조차 자신이 정해놓은 순서에 따르도록 지시문을 작성해놓은 후 이를 작품 판매시 계약서에 포함했다. 화가로서 고야가 지닌 독보적인 위상을 넘어서 포장가로서 그가 새로운 시대의 연결고리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종종 집 뒤편의 리본 가게에 특별 주문을 해서 자신의 서명과 제작 연도를 새긴 리본으로 포장을 마무리하곤 했는데 이때 심부름을 하던 가게 주인의 딸 브리얀떼에게서 근대적 미술품 포장의 싹이 발아되는 운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고야의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 포장에 눈을 뜬 브리얀떼는 화려하고 다양한 재질의 포장지를 탐구하고 섭렵한 십대 시절을 거친 후, 그림의 포장지는 공기와 수분이 적절하게 보충되고 차단되는
유연함을 보증하면서 동시에 물에 젖지도, 그렇다고 불에 타지도 않는 견고성을 가져야 한다는 정의를 내렸고, 이를 현실로 이루어냈다. 그가 그런 포장지를 개발한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아시아로 가서 세 곳의 장인에게 사사를 하고 세 명의 불자에게 수련을 받아 3년간의 연구를 했다는 설, 아이슬란드의 외딴 섬에 박혀 살며 즉시 불을 끌 수 있도록 눈 속에서 토종 동식물과 옷감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밑천으로 실험을 거듭하였다는 설, 계속해서 신발 밑창을 덧대어가며 불과 물을 거닐다 이윽고 스페인을 네 바퀴를 돌아서야 포장지를 완성했다는 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신념대로 유럽지역의 미술관을 돌며 단 한 장의 종이에만 미술품을 모사한 후 그 종이를 태운 잿가루를 버리고 웃으며 다시 종이 제작에 돌입했다는 설. 떠도는 모든 이야기가 비합리적이고 논리적 비약이 큰 탓에 아무도 그의 전설을 신뢰하지 않지만 실물을 본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그런 종이. 그는 그런 종이야말로 불세출의 걸작들을 포장 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다. 그의 포장지는 현재까지도 세간에 알려지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는 어딘가의 명작들을 감싸는 종이가 되어 그 임무를 다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브리얀떼 이후 기술의 발달과 함께 부침을 겪은 근현대의 미술 포장 이야기를
다룹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