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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학자 ‘레몬’은 세대마다 전해지는 은행나무의 특수한 유전형질의 주기를 연구한 논문을 학회에 보고할 단계에 막 접어들고 있었다. 나사로부터 온 우편물을 뜯기 전까지는. 서두는 이렇게 시작했다. “친애하는 레몬 박사님께. 우리는 당신과 함께 우주로 그림을 보내고 싶습니다.”

 

 1990년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한 우주정거장 T는 본부로부터 2년에서 길게는 4년마다 연구를

위한 실험기구와 우주정거장 보수를 위한 장비, 우주인들이 사용할 생필품을 전해 받았다. 시작은 1994년에 발송한 첫 번째 소포꾸러미부터였다. 그때부터 우주인들의 정서적 환기를 목적으로 회화 작품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뒤로 1996년부터 2014년까지 7회에 걸쳐 20여 년 동안 배송한 그림 중 단 하나도 멀쩡하게 도착한 적이 없었다. 우주선에 반달리스트를 대동한 것도 아닌데. 다섯 점은 부서지거나 찢겨졌고, 두 점은 흔적이 있거나 없이 사라졌다. 6회차에 이르러서야 이 일은 특수한 포장재를 필요로 한다는 의견 아래 진행한 마지막 배송마저 실패로 마감한 이후, 레몬에게 접촉하게 된 것이었다. 

 

 북위 41도에 위치한 은행나무에만 사는 ‘웃음짓는노랑다리벌레’(이하‘웃노벌’)는 은행나무와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무성한 잔털을 두르고 다니는데,봄이

지나면 은행나무 사방 곳곳에 털을 뿌리며 생식활동을 한다. 이 웃노벌은 이 기간을 포함하여 생애주기 동안 총 여덟차례의 털갈이를 한다. 웃노벌은 은행나무의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여 지그재그로 20,000회 정도를 일생 동안 부지런히 왕복한다. 애벌레 때는 방어 능력이

미약하지만,왕복을 거듭하며 정밀한 빗물 튕김과 흙먼지 반사능력, 열매의 독성을 정화하는 기능을 축적하고 개선한다. 이 방어력은 웃노벌의 잔털과 잔털을 두른 바깥의 털의 이중 구조로 구사되며, 털갈이를 할수록 강력해진다. 털갈이를 할 때,몸에서 바깥의 털이 떨어져 나오면서 은행나무 껍질의 산성 성분과 맞닿으면 녹아내리며 스며든다. 그후 안쪽 잔털이 다시 떨어져나와 겉표면에 뿌려져

껍질을 한번 더 코팅한다. 나무껍질에 녹아든 웃노벌의 방어 기능을 은행나무의 DNA에서

추출하여 증폭시키는 데 성공한 레몬의 지난 논문의 많지 않은 조회수 중 나사의 클릭이. 

 

 레몬은 봉투를 뜯고 고민했다. 포장지? 우선은 그림이 망가져서 도착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우주의 그림으로서 적합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둘째로는 그림. 그는 그림을 잘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종다양한 데이터가 우주 택배의 여정을 거치며 살아남는 와중에 어떤 이유로

그림이 변하게 되는지는 연구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레몬은 봉투를 책상에 톡 치며 읊조렸다.

‘싫어하는 그림이 생각나는군.’ 그는 자신이 견디기 어려웠던 그림을 떠올리며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그해 가을 팀에 합류한 레몬은 바로 연구에 착수했다. 우선 은행나무 껍질에서 채취한 조직에서

미생물을 분리했다. 레몬이 처음으로 고안한 포장지는 그림의 표면 바로 위에 미생물을 거품처럼

배양시켜서 그림이 부풀게 하여 안전한 도착을 유도한 후,포장지를 뜯는 순간 균만 사멸하여 원래 두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께는 회복해도 부풀었던 거품 표면이 아무데나 내려앉아 색도 선도 엉망이 되었다.

 

 다음은 결계를 치기로 하였다. 그림을 바늘로 뚫어야 하는 한심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레몬은 주에서 가장 뛰어난 결계사를 연구실에 초대하여 결계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결계전문가는 그림 같은 사물에는 가장 잘 알려진 사분면 꼬챙이 기법보다는 손이 많이 가더라도 표면을 모서리, 테두리,

가운데로 나눠서 총 1,212줄의 선을 통과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자문을 바탕으로

웃노벌 털을 꼬아 실을 만들기로 하였다. 지금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실의 투명도를 보강하는 중이다.

 

 레몬은 털의 추출물을 응고했다가 물에서 서서히 녹인 액체에 그림을 담가 놓는 방식을 추진하였다. 담갔다 말렸다를 반복하다 보면 그림에 두꺼운 막이 생기는데, 이 막의 경도가 높지는 않지만

투명성이 보장되고 자연스레 액자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단지 균일하지 못한 표면을

잘 다듬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융처럼 부드러운 천 위에 액체를 묻혀서 살살 문지르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때 핵심은 뒷면이다. 나무틀은 물론이고 천의 뒷면까지 스며들도록 꼼꼼히 바르자 앞면은 기대했던 표면을 이루었지만 뒷면에는 그림을 영사기로 비추는 것 같은 형상이 아른거렸다.

지폐를 빛에 비췄을 때 위조 방지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막상 걸어두면 뒷면을 볼 일이

없지만,그림이 온전치 못하게 우주로 도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포기를 모르는 레몬은 위의 방법을 조합하여 총체적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우선 그림의 앞, 뒤, 옆 구석구석 모든 면에 웃노벌 털 진액을 바른다. 이동하는 시간만큼은 가장 안전이 유지되는 거품

포장지로 그림을 감싼다. 도착한 후 포장지를 풀면 거품이 이리저리 자리를 잡으려 뒷면으로

넘어갔다가 이미 뒷면에 비치고 있는 형상을 데리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털로 짠 투명실을 이용하여 레몬 박사의 이니셜을 수 놓아 결계를 대신하게 한다. 마무리.

 

 레몬은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임무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구 밖 그림과 마주 볼 때

 

대금주(포장미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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